[조선일보/이것이 궁금하다] 초음파 영화 '박쥐' 속 저주파 옛 가요들

[조선일보/Why, 이것이 궁금하다] 초음파 영화 ‘박쥐’ 속 저주파 옛 가요들

남인수 이난영의 묻혀 진 노래들, 부활의 날개 짓



오늘 자 조선일보에 제가 쓴 컬럼입니다.

최근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 '박쥐'에 사용된 남인수, 이난영의 노래에 대한 감수를 제가 맡았었습니다.

조선일보에는 지면 관계상 원고 앞부분이 약간 잘렸는데 본래 쓴 원고 그대로를 올립니다.
혹 영화를 보신 분들께서 음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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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궁금하다] 영화 ‘박쥐’에 남인수, 이난영 노래가 흐르는 사연

글 l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눈은 새로운 것에 번쩍 뜨이고 귀는 익숙한 것에 솔깃해진다고 하던가.
그러한 점에서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박쥐'는 스크린에서 잠시도 눈과 귀를 뗄 수 없는 요소가 가득한 영화다.


'뱀파이어가 된 신부'라는 독특한 테마로 인간의 본능과 윤리적 갈등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듯 지금껏 한국영화 사상 가장 많은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목할 만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배경음악. 우아한 리코더 연주로 재현되는 바흐의 칸타타 82번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30~50년대 노래들이 이난영, 남인수의 목소리로 절묘하게 배합되면서 영화 속 두 개의 세계의 이질감을 생생히 묘사한다.


“영화음악의 컨셉은 벰파이어가 된 신부, 즉 상현의 세계에는 바흐의 선율이 사용되고 여주인공 태주가 속한 ‘지옥’같은 일상을 그릴 때는 남인수 이난영 노래가 사용됩니다. 두 세계의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을 컨셉으로 잡았지요.”


박찬욱 감독의 설명이다.
'박쥐'에 삽입되며 새삼 주목받고 있는 옛노래 세 곡은 이난영의 '고향'과 '선창에 울러왔다',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 고색창연한 듯 삶의 애절함이 짙게 배어있는 이 노래들은 영화 전편에 걸친 클래식과 미묘한 불협화음을 이루는듯하지만 실제로는 사건을 풀어가는 중요한 장치다.


영화 자체는 호, 불호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사운드트랙만큼은 별 이견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음악감독은 조영욱씨가 맡았다. 극중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며 사건과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까지 맡고 있는 남인수 이난영의 노래는 박찬욱 감독이 꺼내든 비장의 카드다. 선곡 또한 직접 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팬이었을 만큼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남인수입니다. 클래식, 재즈, 락 등 모든 장르를 포함해 음반으로 녹음된 목소리 중 최고죠. 이난영 노래는 이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둘 다 완벽한 목소리의 소유자로 처음 듣는 순간 매료되었죠.”


두 가수의 노래 수백 곡을 찾아 들은 끝에 음악적 완성도와 함께 박쥐에 잘 어울릴만한 곡을 나름대로 선정했다고 한다.


감독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하필 권태로움을 묘사하는 부분에 사용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이 노래는 후반부 들어 다시 등장, 화면에서 보여 지지 않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중요한 코드로 사용된다. 노래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것으로 보여진다.


박쥐는 제작단계부터 세계적 관심을 모은 영화다. 미국 유니버샬영화사가 직접 제작에 투자, 세계무대를 함께 겨냥했기 때문에 감독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최고가수의 노래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은 의도도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영화 속 이 노래들에 대한 감수는 필자가 맡았다. 이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월북작가들이 만든 노래가 포함되어 있어 한동안 금지곡으로 묶여있었고 그래서 이후 변칙적으로 개사, 개작된 채 발표된 노래들이라는 점이다.




이난영의 '고향'은 본래 1941년에 만들어진 노래다. 조명암 작사, 김해송(이난영의 남편) 작곡으로 영화에 사용된 노래는 1960년도에 재취입한 것이다. 당시 이 노래의 원 작사, 작곡가가 모두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음반사 측에서는 변칙적으로 유광주에게 개사시키고 이난영의 오빠이자 음반사 대표인 작곡가 이봉룡의 이름으로 작곡자 표기를 해 금지의 굴레를 비껴갔다.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에 발표된 노래이며 또한 '선창에 울러 왔다'는 본래 1938년에 박영호 작사, 김해송 작곡으로 가수 박향림의 노래로 먼저 발표되었던 노래. 이 또한 월북작가의 곡이었던 탓에 박남포(반야월의 예명) 개사, 이봉룡 작곡으로 표기해 이난영의 목소리로 발표될 수 있었다. 이렇듯 이 노래들은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된 우리 가요사의 불행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노래인 셈이다.


전 남편의 곡이었지만 이름을 바꿔 재취입해야 했던 이 시기에 이난영과 남인수는 부부사이였다. 이들이 부부사이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며 대중들 앞에 등장했던 무대가 59년 부산mbc 개국 특집 공개방송무대. 이들의 육성이 테이프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당대 남녀 톱스타들 간의 세기적 로맨스는 우리나라 질곡의 시대를 관통한, 사랑을 뛰어넘은 사랑이라는 점에서 박감독 역시 둘 간의 극적인 사랑은 욕심낼만한 소재였지만 이들의 노래를 대신할 수 있는 배우가 없다는 판단에 욕심을 접었다.


이러한 이난영, 남인수의 세기적 로맨스는 얼마 전 드라마작가 이선희씨에 의해 '방송80주년 특집 25부작 드라마'로 기획, 진행되다가 이들과 얽힌 주변 인물들의 압력 그리고 당시 쇼를 재현할 제작비가 만만치 않아 현재 보류상태다.


보다 많은 이들의 노래를 영화 속에 등장시켜 한 열 곡쯤 OST음반에 수록, 남인수 이난영 붐을 일으키고 싶었다는 박찬욱 감독. 하지만 저작권 해결 문제 등 현실적 난관에 부딪혀 의도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심경을 토로한다.


초음파의 소리까지 감지한다는 지구상 유일한 동물 박쥐,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남인수, 이난영 노래 속에 흐르는 아픈 대한민국 과거의 소리를 얼마만큼이나 감지해낼 수 있을까.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 Copyrights ⓒ2009-5-23일자, 조선일보.

by 가요박물관 | 2009/05/23 11:39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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